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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혼돈 속에는 좋은 것도 기다리고 있다

by 민히 2022. 5. 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Why Fish Don't Exist)
룰루 밀러
곰출판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까?


책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때 독후감 쓰기. 인스타그램 피드가 온통 이 책으로 도배되고 극찬하는 글이 너무 많아서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다. 꼭 스포를 읽지 않고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는 글이 많았다. 대체 어떤 책이길래? 과학책이 뭐가 그렇게 대단할까? 랩걸보다, 코스모스보다, 좋은 책일까?

나에게 이 책은 인간이 정해놓은 틀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우리가 만든 것, 그 이상을 봐야한다는 것.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줄거리

*스포주의*
책 내용은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간다. 혼돈 →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 → 심리학 → 그릿(GRIT) → 우생학 → 물고기 → 마침내, 에필로그까지. 책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는 책 제목과 대체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지 무척 궁금했고, 끝에 가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인간은 중요하지 않다'는 믿음으로 삶을 살았다. 인간은 그저 점 위의 점 위의 점 정도의 존재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과학의 관점에서 인간을 본다면 그저 지구에 살아가는 어느 생물보다 인간이 더 중요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이런 생각은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심어졌다.) 그러나 이런 믿음이 그녀의 마음을 병들게 했다. 인간이 중요하지 않다면 내가 계속 살아나가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혼돈 자체인 이 세상에서 인생을 계속 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그녀는 이 해답을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에서 찾기 위해 그의 인생과 연구 자체를 파헤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 연구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분류학자다. 더 세부적으로는 세상의 모든 물고기를 분류하고 싶어한 어류 분류학자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물고기를 발견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의 모든 업적을 무너뜨린 지진, 아내의 죽음, 자식의 죽음 등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고도 무너지기는 커녕 오히려 연구를 더 몰아붙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저자는 고통을 겪은 이후에도 더 악착같이 삶을 이어나가는 이 과학자의 생각, 동기부여, 생각의 매커니즘을 알고 싶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알고보니 스탠포드 대학의 초대 학장이었고 자기가 믿는 바를 실현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고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또 우생학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의 우생학에 대한 집착 때문에 수많은 여성들이 엄마가 될 기회를 잃었고 강제 불임시술이 미국에서는 한때 합법이었다는 사실이 매우 충격이었다. 그는 다윈의 종의 기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연에 위계질서가 있다고 믿는 과학자였다. 한마디로 인간적으로도 직업적으로 실패했다. 이런 삶으로부터 저자는 배울 것이 없었다. 다만 그의 인생과 업적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스스로 해답을 찾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의 주제, 물고기가 없다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분류는 없다. 물고기마다 분류가 다르다고 한다. '어류'라고는 명확하게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어류'라는 것은 인간이 편하려고 만들어놓은 것일뿐 실제가 아니다. 세상에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어느 순간부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류라는 분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포인트가 있었을 것이다. 진실이 아닌 걸 알면서도 유용해서, 혹은 그렇다고 믿고 싶기 때문에 진실을 의도적으로 피했을 것이다.)
사람은 혼돈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자연에는 애초부터 질서라는 것이 없다. 자연에 질서를 매기려는 것 자체가 인간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만났다. 인생에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것은 내가 얻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파괴,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도 혼돈의 일부라고 말한다.

오랜만에 읽은 과학책이었다. 단순히 과학에 한정된 책이 아니었다. 과학, 심리학, 철학 등 많은 학문을 넘나드는 이야기였다. 인스타그램의 수많은 책 후기에서 왜 스포없이 책을 읽으라고 했는지 알겠다. 이런 결말의 책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예상할 수 없어서 더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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