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백수린 에세이
백수린의 <아주 오랜만에 행복한 느낌>은 그녀가 성곽길 근처의 언덕 집에서 보내는 따뜻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언덕의 집과 그 집이 위치한 성곽길 옆 동네라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단독주택의 불편함, 예를 들면 누수관리나 겨울철 동파관리, 눈이 쌓이기 전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 분리수거 같은 불편함을 무릅쓰고 이웃의 정, 성곽길의 아름다움, 사람 간의 교류 같은 따뜻한 가치를 누리며 언덕 집에 산다. 서울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도시생활에서 느끼기 어려운 감각들, 마치 내가 아주 어릴 적 살던 동네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곳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그녀가 말하는 사랑과 사람, 성장, 자연을 보면 얼마나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인지 온전히 느껴졌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아늑한 방이 떠오르는 산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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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집
p21
미래 쪽으로 흐르는 시간은 어떤 기억들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하지만, 장소는 어김없이 우리의 기억을 붙들고 느닷없이 곁을 떠난 사랑하는 것들을 우리 앞에 번번이 데려다놓는다.
p31
우리는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나는 자리마다 놓인 뜻밖의 행운과 불행, 만남과 이별 사이를 그저 묵묵히 걸어나간다. 서로 안의 고독과 연약함을 가만히 응시하고 보듬으면서.
p40
사는 건 자기 집을 찾는 여정 같아.
p59
이제 나는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p72
내 마음은 언제나, 사람들이 여러가지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이고 매일매일 흔들린다는 걸 아는 사람들 쪽으로 흐른다. 우리가 어딘가로 향해 나아갈 때, 우리의 궤적은 일정한 보폭으로 이루어진 단호한 행진의 걸음이 아니라 앞으로 가다 멈추고 심지어 때로는 뒤로 가기도 하는 춤의 스텝을 닮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만 아주 천천히 나아간다고.
p130
사람들이 그토록 서투른 말을 건네는 이유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p151
사랑은 고이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곳을 향해 흐르는 강물일 것이므로. 끝내 모두를 살게 하는 것이므로.
p176
사주풀이를 들으며 나는 전형적인 서사를 부순 자리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쓸 힘이 어느새 내게 생겼다는 걸 기쁜 마음으로 깨달았다.
p198
이제부터는 새로운 삶이 펼쳐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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