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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다정한 구원> : 리스본 여행기, 부모님과 그녀의 찬란했던 시절

by 민히 2022. 2. 12.

 

 

다정한 구원, 임경선

 

 

다정한 구원
다정한 구원, 임경선

 

리스본 여행기, 그리고 부모님의 추억

책장 정리를 하다가 임경선의 <자유로울 것>, <태도에 관하여>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서 <다정한 구원>도 읽기 시작했다. 여러 주제에 대해서, 특히 일상에 대해 글을 쓰는 작가라서 이번에도 생활 에세이겠거니 했는데, 여행기이자 이제는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세상에. 더 빠져들었다.

해외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욕구도 생기고, 나와 내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어려운 주제인데, 그녀는 이걸 담백하게 써내려간다. 그 어려운 걸 해낸다.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부모님도 그냥 한 명의 평범한 사람이다. 완벽한 인격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부모님도 그들만의 결핍, 단점이 있는 것이다. 이걸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다 커서 대학생이 되어서야 깨달았었지.

그녀는 열살 때 부모님을 따라 리스본에서 1년을 살았다. 이 1년은 그녀의 부모님에게도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었다고 전했다. 부모님 두 분 다 보내드리고, 그녀는 슬픔과 고통을 달래기 위해 딸과 리스본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녀가 살았던 곳을 다시 느껴보고 리스본의 따뜻한 햇살을 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좋은 추억일수록 기억에 남길 것

 

Remember your year here with affection

 

 

 

이 문구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여기서 보낸 1년을 애정을 갖고 기억해. 리스본의 따뜻한 햇살을 받고 무럭무럭 자란 1년의 찬란했던 시간을 기억해. (리스본에 가본 적은 없지만 스페인의 따뜻한 햇살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좋은 일들만 기억해도 모자랄 판에, 우리는 아프고 다친 기억을 더 많이 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지. 기억할 가치가 없는, 기억할 필요가 없는 시간들은 안고 살면서 정작 기억해야 할 수많은 소중한 시간들은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내 소중한 시간들을 꼭 기억할 것. 나 스스로 해냈던 시간들, 영국에서 보냈던 시간들, 결혼하던 날, 프로포즈를 받았던 날, 집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 같은 것들까지. 내 삶에 소중한 것들은 의식적으로 더 기억하기.

 

내가 하는 모든 기록들도 기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살아낸 것이 삶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했다. 기억은 미화되거나 왜곡되기 마련이라 짧게나마 글로 남겨 놓은 메모들은 훗날 과거의 시간을 그나마 당시의 느꼈던 감정들과 비슷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얼마 간의 시간을 통째로 비워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나를 데려다 놓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런던으로 떠나자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런던에서 살았던 공간을 다시 둘러보고 싶다. 그녀가 리스본에서 보낸 시간을 추억하며 그 시절의 공간을 둘러보았듯이. 런던을 떠날 때만 해도 다시 돌아오는 게 무척 쉬울 줄 알았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록 돌아가 볼 기회가 없었다. 그동안 나는 평생의 짝이 생겼고 더 많이 배우고 가진 것도 많아졌다. 그리고 가진 게 많아질수록 훌쩍 떠나기가 힘들어졌다. 코로나가 끝나면(대체 언제 끝날지 도저히 모르겠다. 이제 예측하고 예상하기도 지쳤다.)

남편을 데리고 런던에 가서, 내가 살았던 동네와 공원, 자주 가던 카페를 함께 둘러보고, 새 추억도 만들어오고 싶다. 자주 가던 햄스테드 히스 공원부터 떠오른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날에는 햄스테드 히스를 한 바퀴 돌고(너무나 광활한 공원이라서 갈 때마다 산책 코스가 달라졌었다. 하루는 운동복을 잘 갖춰입은 어떤 여자를 따라갔는데, 입이 턱 벌어지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다. 그 곳이 가장 좋아하는 코스가 됐다. 언덕을 넘어갔을 때 발견했던 조그만 연못, 그리고 그 주변에 하나 둘 둘러 앉은 연인들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었지.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면 새로운 걸 자꾸 시도해봐야 하나보다.), 르팡쿼티디안에서 스콘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게 기쁨이었다.

 

 

더 많이 떠나자

대학생 때 워낙 많이 돌아다녀서 한동안은 해외여행에 대한 욕구가 아예 없었다. 그러다 코로나 때문에 2년 넘게 하늘길이 막히고 나니 여행이 무척 그립다. 이미 가본 곳도 다시 가보고 싶고, 가보지 못한 곳으로도 떠나고 싶다. 차를 렌트해서 캐나다 소도시 여행을 해보고 싶고, 북유럽에 오로라도 보고 싶다. 리스본은 아니지만 포르투갈의 포르투도 가보고 싶다. 스페인이랑 포르투갈이랑 같이 다녀오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우리 둘다 길게 휴가를 내고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길까? 신혼여행이 사실 좋은 기회였는데 그것마저 코로나 때문에 제주도로 다녀왔다.(해외를 못가서 아쉽지만 제주도도 나름대로 충분히 즐거웠다.) 함께 좋은 곳으로 떠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길까?
인생은 짧다는 걸 느끼는 빈도가 갈수록 많아진다. 부지런히 다니고 부지런히 느껴봐야한다. 나와 남편 둘다 직장인으로 계속 살아간다면, 우리 둘이 오랫동안 멀리 여행을 다녀오는 건 몇 번 정도 할 수 있을까? 

 

 

 

부모님의 가장 찬란했던 시절, 그 시간을 그녀가 기억하고, 그 시절을 보냈던 공간으로 돌아가볼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우리 부모님이 빛났던 시절은 언제였을까? 난 그걸 모른다. 리스본 여행기와 부모님의 이야기가 겹치는 이 에세이가 참 좋았다. 좋은 책을 읽을 때면 내 인생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번 책도 그랬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면 얼마나 큰 상실감이 들지, 인생의 짐은 다 내려놓고 인생을 즐기는 부모님을 1년씩이나 보는 건 어떤 기분일지, 그런 부모님이 나이들고 세상을 떠나는 건 어떤 기분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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