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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마음 쓰는 밤 - 고수리

by 민히 2023. 7. 30.


마음 쓰는 밤
고수리

 

마음을 쓴다는 말은, 시간을 쓴다는 말과 같다. 

 
 


가볍게 읽으려고 한 책이었는데 읽다가 자주 멈춰야했다.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글쓰기로 회복하는 모습을, 글쓰기 안내자인 고수리님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이다. 작가 자신의 고통과 치유와 회복을, 그리고 학우들이 스스로의 고통을 글로 풀어내며 회복하고 세상으로 나가는 경험을 말한다. "판단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마음. "한 번이라도 타인과 이런 대화를 나눠본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경험은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해본다는 말이다. 제 3자의 시선으로 한 걸음 물어나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3대 악이 있다. 자기연민, 피해의식, 열등감. 나도 과거의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때가 있었다. 고수리의 말처럼 "사무친 이야기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의 이유가 되고, 결과가 되고, 핑계가 되고, 변명이 되고, 좌절이 된다. 나아갈 수가 없다. 도돌이표를 그렸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억울해졌다. 내 잘못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 과거가 지금의 내 행복을 붙잡는 것이 억울해졌다. 그래서 정말 어느 날 갑자기 결심했다. 과거의 불행이 내 행복을 망치게 두지 않겠다고. 지금부터 모든 것은 내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그렇게 20대에 자기연민, 피해의식, 열등감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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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0
사무친 이야기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의 이유가 되고, 결과가 되고, 핑계가 되고, 변명이 되고, 좌절이 된다. 나아갈 수가 없다. 도돌이표를 그렸다. 글쓰기는 매듭 짓기가 아니라 매듭 엮기다. 내 이야기에 내 방식대로 매듭을 엮어보고 다른 이야기로 연결해서 쓰고 묶는다. 그리고 다시, 또다시.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해 연결된 삶이라 생각해본다면, 나는 그것들을 내 방식대로 묶고 엮고 다시 이어갈 수 있다. 
 
p31
저는 집에 있어도 종종 행방불명이 됩니다
초인종이 울려도 나가지 않습니다
전화벨이 울려도 받지 않습니다
지금은 여기 없기 때문입니다
 
- 이바라기 노리코, 행방불명의 시간
 
p37
작은 시간과 작은 성취와 작은 꾸준함이 모여 나의 삶을 만든다.
 
p109
이제는 익숙해져 미세한 진동을 자각하진 못해도 여전히 삶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삶이 자연스러워졌다. 흔들리고 있는 삶에서 이따금 평온함을 만나기도 한다. 비로소 나는 잔잔해졌다.
 
p114
가족 이야기 말고 자기 이야기를 먼저 쓰세요.
 
p176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생각해보면, 나에겐 글보단 삶이다. 마음을 쓴다는 말은, 시간을 쓴다는 말과 같다. 나는 삶에 충분한 시간을 쓰기로, 그래서 조금 천천히 가기로 했다.
 
p193
혼자서만 똘똘 자기에게로 골몰하면 똬리를 틀고 자기 안에 빠지고 말아, 힘내어 밖을 향해야 해.
 
p195
"삶이란 어느 한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기억을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다.
- 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 수전 티베르기앵
 
* 삶은 내 기억을 묶고 엮고, 한 가지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남겨서 그것을 내 삶에 어떻게 써먹을지 결정하는 일.
 
 


 

 

고수리 작가의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도 읽어보고 싶다. <마음 쓰는 밤>보다 더 먼저 나온 책으로, 고수리 작가가 글쓰기로 삶을 열기 시작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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