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행복하게 혼자!

by 민히 2022. 12. 4.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 김명남 옮김

Caroline Knapp

#인생에세이 #에세이추천 #책추천


<명랑한 은둔자>는 내가 인생 책이라고 꼽는 에세이다. 2년 전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이토록 거대한 책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떨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나고 또다시 이 책을 읽었는데 여전히 좋다. 명작.(요즘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어 져서 책장에서 재밌게 봤던 책을 하나씩 뽑아서 읽는 중이다)

캐럴라인 냅은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용감하게 털어놓는다. 섭식장애, 알코올 중독, 부모님과의 관계 등. 하나같이 너무나 개인적인 것에 대해 이토록 솔직하고 심도 깊은 글을 쓰는 그는 용감하고 대단하다. 캐럴라인 냅은 2002년 4월에 폐암 진단을 받았고, 5월에 결혼을 하고, 6월에 사망했다. 더 이상 그녀의 새로운 책은 나올 수 없으니 그녀가 30~40대에 쓴 책들을 더 아껴서 읽고 싶었다.

이 책을 폈을 때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반갑고 좋았던 이유는, 제목 명랑한 '은둔자'에서 알 수 있듯이 내향적인 사람의 이야기를 아주 솔직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 된 <명랑한 은둔자>라는 글을 보면, 그녀는 집에서 고요히 시간을 보내다가 '명랑한 은둔자'라는 말을 떠올린다. 자신을 묘사하는 완벽한 단어의 조합! 명랑한 + 은둔자!

 

명랑한 은둔자


p41.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산뜻하고 멋지게 들리지 않는가? 행복하게 혼자라고? 은둔하는데 명랑하다고? 그런 모순이 어딨어! 그건 불가능해! 안타깝게도, 이런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p47. 왜 혼자 지내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늘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생활의 속도와 리듬에서 사치스러운 안도감을 느꼈다. 나 자신의 선택이라는 이유밖에 없더라도. 나는 내 난장판을 다스리는 자이고. 홀로 있는 상태는 개성의 온상이고, 나는 홀로 있는 상태가 그렇게 변덕을 맘껏 발산하도록 해준다는 점이 좋다.

p48. 고독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두고 즐길 때 가장 흡족하고 가장 유익하다.

p49. 그날 밤 부엌에서 켈로그 만찬을 준비하며 내 집의 단정함과 조용함을 즐길 때, 그 시간이 고마운 선물이자 일종의 승리로 느껴졌다. 나는 혼자 있는 걸 늘 대단히 편하게 여겼지만, 그러면서도 그 상태를 만끽할 줄은 몰랐다.

본투비 집순이인 나는 이 글을 읽자마자 속이 뻥 뚫렸다. 왜냐면 내가 바로 '명랑한 은둔자'니까.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에서 혼자 고요히 시간을 보내는 일. 이게 바로 온전한 나로 시간을 보내는 때이다. 혼자 집에서 보낼 때 모든 긴장이 풀리고 표정은 가장 편안해지고 행복함에 미소가 스멀스멀 나온다. 회사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퇴근하고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에너지가 솟고 즉각 회복된다. 내 생활습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우리집.
이제는 결혼을 해서 두 사람이 한 집에 살고 있지만, 남편은 또 다른 나처럼 느껴져서 혼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느껴진다. 게다가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각자 일을 하는 걸 좋아한다. '고독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경에 두고 즐길 때 가장 좋다'는 캐럴라인 냅의 말처럼, 지금의 고독이 더 좋다!
아아 나는 내가 명랑한 은둔자라는 것, 집순이라는 사실이 참 좋다.

p40. 이것은 정말 마술적이고 변혁적인 순간이다. 나 자신에 대한 기정사실들이 저절로 모습을 바꾸더니 새로운 질서에 따라, 놀랍고 신선한 시각에 따라 재구성되어 내 내면이 삽시간에 재편되는 듯한 순간이다. 오래된 생각이 새로운 생각으로 바뀐다. 기존의 정의가 새로운 전개를, 새로운 분위기를, 새로운 의미를 취한다.
명랑한 은둔자라는 단어를 생각해낸 순간의 냅.

 

 

부모님 은혜의 시기
p119. 부모님 은혜의 시기란 당신이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될 만큼은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부모를 걱정할 만큼은 나이가 들지 않은 시기, 그 짧은 시간을 뜻한다.
지금 나는 바로 이 부모님 은혜의 시기에 있다. 부모님 모두 건강하시고 경제 활동도 활발히 하시고, 나는 결혼을 해서 나만의 가정을 꾸렸다. 서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시기. 하지만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건강이 나빠지시거나 부모님이 나이가 더 들면 이 시기는 끝날 것이다. 부모님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고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겠지...

 

캐럴라인 냅은 이탈리아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p253. 인생은 가끔가다가 한 번씩 여유가 있는 토요일에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매일 즐기는 것이라고 투철하게 믿을 것이다.

나도 매일 출근길 아침 다짐한다. 오늘 하루도 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하루라고. 그러니까 재밌게, 즐겁게, 소중하게 보내자고. 일주일에 주말 이틀만 내 삶이 아니라고.

캐럴라인 냅은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마주하는 용감한 사람이다.

 

 

P197. 나는 자유로운 저녁과 주말을 어떻게 쓰기를 좋아할까? 내게 혼자 있는 시간과 함께 있는 시간의 적절한 혼합 비율은 얼마일까? 나는 타인이 나를 얼마나 접촉하고 사랑하고 의지하면 좋겠는가? 나는 무엇에 재미를 느끼고, 무엇에서 위안을 얻고,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일까? 시행착오와 데이터 수집. ~ 700번 한 뒤에 발견했다. 그래, 나는 이게 좋아.

p80. 자신감이 있고, 자신을 돌볼 능력이 있고, 자신이 귀하다고 느낄 때는 마이클의 애정을 덜 필요로 하고, 내면의 쓰라린 허기를 덜 예민하게 느끼는 편이다.

20대 초반 갓 연애를 시작할 때는 내 자신이 단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의 기분과 행동에 따라 많이 흔들렸다. 연인에게 한없이, 한없이, 무한한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자신의 뿌리가 탄탄하지 않으면 밖에서 무한한 사랑을 줘도 사랑을 받을 줄 모르게 된다. 20대, 연인과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내가 깨달은 것. 내가 중심을 잡자 연인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p192. 우리는 각자의 부모에 대해서 오랫동안 남몰래 화낸다. 이 괴로움을 놓아버리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고, 자기 인식과 성숙함과 시간이 절묘한 비율로 섞여야 가능한 일이다.

부모님을 이해하는 일. 부모님 역시 한 인간이고 실수투성이인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 

캐럴라인 냅은 본인의 중독에 대해서도 고백한다. 알코올 중독, 그리고 섭식장애까지. 중독의 이유는 본인의 감정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도 고백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용감하게 마주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나아질 방법을 찾는다. 한 번에 조금씩. 술을 마시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방탄조끼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 같이 두렵다고 하면서도, 삶을 살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라며 그녀는 용감하게 또 살아나간다.

 

그녀는 감정을 마주하기 싫어 알코올 중독과 섭식장애로 고통받기도 했지만, 그녀가 쓴 글을 보면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알아차리고 치밀하게 분석한다는 점에서 그녀는 그 누구보다 용감한 사람이다. 내향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일, 수줍음에 대하여, 부모님을 떠나보낸 상실과 회복, 부모님과의 어려웠던 관계, 중독으로부터의 회복, 사랑과 우정 등 인생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의 밀도는 엄청나다. 나 역시 명랑한 은둔자라, 이렇게 거대한 책을 만날 수 있어 큰 행운이다.

 

 
명랑한 은둔자
『명랑한 은둔자』는 캐럴라인 냅의 유고 에세이집으로, 캐럴라인 냅이라는 작가의 삶 전반을 빼곡히 담고 있는 초상과 같은 책이다. 캐럴라인 냅은 삶의 미스터리가 크든 작든 그 모두를 예민하게 살피고, 무엇보다 거기서 자기 이해를 갈망했던 작가다. 그는 이 에세이에서 혼자 살고 혼자 일했고, 가족과 친구와 개와 소중한 관계를 맺으며 자기 앞의 고독을 외면하지 않았던 삶을 이야기한다. 또한 알코올과 거식증에 중독되었으나 그로부터 힘겹게 빠져나왔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옥죄었던 심리적 굴레를 벗어나 자유와 해방감을 경험한 한 인간의 깨달음을 들려준다. 캐럴라인 냅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중독, 결핍, 가족, 반려견, 우정, 사랑, 애착, 일, 성장, 슬픔, 상실, 고립, 고독……. 특히 중독은 냅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키워드다. 그는 알코올 중독과 거식증을 겪으면서 자신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보았고, 그 까마득한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다시 한 번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맞서는 시간을 보냈다. 누구보다 캐럴라인 냅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옮긴이 김명남의 말처럼, 냅은 자기 이해와 수용, 그리고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애썼고, 더 자유롭고, 더 즐겁고, 더 자신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자신의 강함과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결국 삶의 명랑을 깨달은 저자로부터, 우리는 만난 적 없지만 오래 이어온 듯한 우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냅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 같고, 내 친구 이야기 같다. 이것이 냅의 재능이고, 그의 글이 가진 힘이다.
저자
캐럴라인 냅
출판
바다출판사
출판일
2020.09.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