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웃기다.
이렇게 웃기고 살 맛 나는 책은 읽고 또 읽어도 좋다.
2016년에 읽고 두 번째 읽는 건데 역시 재밌다.
사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 / 이지수 옮김
#에세이추천 #일본에세이추천 #책추천
이 책을 읽고 나면 책 제목처럼 '사는 게 뭐라고' 싶다. 내 일상이 너무나 소중해지고 재밌어지는 순간.
책 저자인 사노 요코 할머니가 어떤 사람이냐면, 암 재발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바로 재규어 한 대를 뽑는다. "죽을 때까지 인공투석을 해야 하는 병도 있고,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말을 못 하게 된다거나" 그런 병도 있지만 "암은 때가 되면 죽으니까 좋은 병"이라며 럭키하다고 하는 할머니. 암 치료를 하는 와중에는 한류에 푹 빠져서 한류를 모르고 죽었다면 어쩔 뻔했냐며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할머니의 소소한 일상은 재밌다. 그냥 밥 해 먹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텔레비전을 보는 일상인데 그게 무척 재밌다. 책을 읽고 있으면 인생 뭐 별거 있나, 그냥 하루하루 재밌고 즐겁게 살면 되지 싶다. 살 맛 나게 해주는 글이다. 이 책을 특히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를 참아가며 읽었는데, 출근길에는 회사 갈 맛을 나게 해 주고 어서 이 책이 읽고 싶어 퇴근하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육성으로 웃음이 터지는 책이 참 몇 권 안되는데, 김혼비의 <다정소감>과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그리고 바로 <사는 게 뭐라고> 이 책이다.
일본인에게 한류란 대체 무엇일까?
사노 요코 할머니는 암 투병 시기에 한류에 푹 빠졌다. 시작은 역시나 <겨울연가>였고 욘사마에 푹 빠져 <호텔리어>까지 보고 여기서는 김승우에게 빠졌다. <겨울연가>를 봤으니 <가을동화>까지 봤고 여기서는 원빈에게 ㅋㅋㅋ <올인>을 보고 이병헌에게도 빠지고 류시원에게도 빠졌다. 이렇게 나열해놓고 보니 한국 드라마는 진짜 재밌는 게 많다.
<겨울연가>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았지만 유독 일본 여성에게 '욘사마'라고 불리며 인기 있는 이유가 늘 궁금했는데, 사노 요코 할머니 말에 의하면 "한국 드라마의 남자는 일본 남자라면 부끄러워할 만한 일을 태연하고 당당하게 해치운다." 일본의 아줌마들의 '죽도록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흔들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한국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최소 1~2명의 남자에게 죽도록 사랑을 받긴 한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평생을 간다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어린 시절이다. 사노 요코 할머니는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무척 가난해서 그야말로 먹고사는 게 힘들 지경이었다. 가난으로 오빠를 잃었다. 중국에서 보낸 가난한 시절은 책 곳곳에 등장해서 할머니가 되었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생활 곳곳에 영향을 준다.
사노 요코 할머니의 이야기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오, 윌리엄!>과 비슷한 점이 많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평생을 간다는 것, 어린 시절 환경으로부터는 100%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오, 윌리엄!>에서도 화자인 루시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자신의 몸에 배어 있다는 것, 시간이 아무리 오래 흐르고 다른 세계를 만나 자신이 조금은 변하더라도 결코 자신의 배경, 출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우리는 나 자신조차도 모른 채 죽는다
그리고 또 하나 일맥상통하는 부분은, 우리는 자기 자신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
<오, 윌리엄!> 중에서,
P298. 우리는 누구도 알지도 못한다,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우리는 모두 미스터리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사노 요코 할머니도 말한다.
P182.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꽃 한 송이의 생명조차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아는 것이라고는 나 자신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을 당시 사노 요코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었다. 일본 어딘가에서 여전히 재미나게 살고 있을 것만 같았는데,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 남겨 놓은 이야기를 읽었다니 기분이 묘했다. 좋아하는 작가, 사노 요코 할머니. 우울하거나 지루할 때, 언제든지 아무 데나 펼쳐서 읽으면 좋을 책이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0) | 2023.01.08 |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오, 윌리엄!>,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0) | 2022.12.13 |
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행복하게 혼자! (0) | 2022.12.04 |
H마트에서 울다 : 딸은 엄마가 세상에 남기는 유산 (1) | 2022.11.21 |
호호호, 윤가은 산문 :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 (0) | 2022.1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