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Where the Crawdads Sing
델리아 오언스 / 김선형 옮김
#소설추천 #장편소설추천
"있잖아, 내가 글 읽는 거 가르쳐줄 수 있어."
테이트가 카야에게.
이 순간 카야의 인생은 영원히 변한다.
책을 펼치자마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서 읽은 책. 이렇게 몰입해서 읽은 소설을 오랜만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엄청난 흡입력과 자연의 경이로움, 주인공의 외로움과 그 감정을 자연에 빗대어 묘사하는 문장, 고독, 사랑, 추리 그리고 따뜻한 인물들의 등장까지. 정신 못 차리고 읽은 소설이었다. 저자 델리아 오언스도 이 소설이 '외로움과 고독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고독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주인공 카야는 습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어린 소녀다. 아버지의 폭행에 엄마가 떠나고 언니 오빠들도 줄줄이 떠났다. 카야가 열살쯤 됐을 때 아버지마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카야는 철저히 혼자 남겨진다. 홍합을 팔고 낚시로 잡은 생선을 훈제하여 판 돈으로 연명한다. 학교에도 나가보지만 습지에 사는 아이라고 놀림받고 다시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카야의 친구는 갈매기들이고 자연이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이다. 카야는 세상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상처 받고 스스로를 더 고립시키고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
#가재가노래하는곳줄거리
카야의 외로움, 혼자 살아나가야 한다는 막막함, 사람에 대한 그리움 같은 감정들이 오롯이 느껴져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고 책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오래갔다. 어린 소녀가 느껴야했을 고독감, 모두 어울려 살아가면서 카야만 습지소녀라고 외톨이로 만드는 마을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실망과 분노, 배신감 같은 감정들까지... 카야는 그럴수록 더 자연으로 파고들었다.
* 책 제목인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뜻은 자연 깊숙이라는 뜻인 것 같다. 카야의 엄마가 카야에게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가서 습지를 탐방하고 오렴!"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테이트도 카야에게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가보자!"고 말한다.
*스포주의*
이런 카야에게 친구가 생긴다. 테이트는 카야보다 몇 살 더 나이가 많고 습지 생물에 관심이 많은 건강한 소년이다. 카야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주고 보살펴주는 테이트에게 마음을 활짝 연다. 테이트는 일찍 세상을 떠난 동생을 떠오르게 하는 카야를 보며 동정심을 느끼면서도 카야의 아름다움에 반했고, 테이트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테이트는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책을 가져다준다. 무엇보다도 고독했던 카야의 삶에 온기를 주었다. 그런 테이트도 대학에 합격하여 결국 떠나야 했는데, 테이트는 카야도 떠나버린다...(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테이트에게 버림 받은 카야는 또 외로운 생활을 시작하는데 그러다 마을의 대표 바람둥이 체이스에게 걸려든다. 그러다 체이스를 죽인 살인자로 오해받아 결국 피의자로 법정에까지 서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반전의 반전이 시작되는데, 엄청난 속도로 책장을 넘기며 책을 읽었다.
#가재가노래하는곳결말
카야는 체이스를 죽였다는 오해에서 풀려나고 다시 그녀가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 테이트와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고 판잣집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꾸려나간다. 같이 보트를 타고 나가서 습지를 탐방하고 판잣집도 새롭게 꾸민다. 카야는 습지에 대한 책도 계속해서 출판한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어느날 카야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테이트는 홀로 남아 카야의 짐들을 정리하는데, 거기서 카야가 체이스를 죽인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카야는 자연의 방식대로 자신을 지켰다.
P339. "난 그렇게는 살지 않을 거야. 언제 어디서 주먹이 날아올까 걱정하면서 사는 삶 따위 싫어."
P67. 토머스 무어의 시
머지않아 나는 그녀의 반딧불이 등불을 볼 테고
그녀의 노 젓는 소리를 들을 테고
우리 삶을 길고 사랑으로 충만하리라
죽음의 발걸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그 처녀를 사이프러스 나무에 숨기리
책에 등장한 시 중 가장 아름다웠던 시. 테이트는 카야가 죽고 바로 이 시를 떠올렸다. 죽음의 발걸음이 다가오면, 사이프러스 나무에 숨기리.
P182. 테이트와 삶과 사랑은 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이제 테이트가 없다. "왜, 테이트, 어째서?"
카야는 진흙탕에서 빠져나올 근육과 심장을 끝내 찾아내곤 했다. 아무리 위태롭더라도 다음 한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 지독한 깡으로 얻은 건 무엇인가? 얕은 선잠이 들었다 깼다 하며 카야는 표류했다.
P184. 몇 달은 1년이 되었다. 외로움은 점점 커져 카야가 품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카야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 존재, 손길을 바랐지만, 제 심장을 지키는 일이 우선이었다. 몇 달이 흐르고 또 한 해가 갔다. 그리고 또 한 해가 흘렀다.
P203.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 누군가가 자신을 진심으로 원하고, 어루만져주고, 끌어당겨 품어주면 좋겠다는 소망.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소망. 사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고 서로 보살펴주고 안아주는 것은 참 삶에서 기본적인 것들인데, 이런 게 충족되지 않는 카야의 삶은 얼마나 철저히 외로울까 싶었다.
P221. 살면서 해본 적 없는 일인데도 곁에 누군가를 두기 위해 자신의 한 조각을 포기했다.
2023.01.07 -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365 days to go, 읽고 쓰기] - 359 days to go, <가재가 노래하는 곳> (4)
다 읽고 나니 조금씩 조금씩 더 아껴서 읽을 걸 하는 후회가 드는 소설이었다. 자연의 묘사를 더 마음껏 누리고 카야의 감정도 더 천천히 따라가고.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영화화되기도 했다. 리즈 위더스푼이 자신의 북클럽에서 소개했고 결국 제작까지 맡아 영화로도 나왔다. 작년에 개봉했는데 곧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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