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한 출발, 프란츠 카프카
민음사
프란츠 카프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변신>부터 그동안 출간되지 않는 단편 소설까지 담긴 카프카의 소설집이다. 나에겐 전반적으로 어려웠는데 그 중에서 <법 앞에서>라는 짧은 소설은 충격이었다.
“여기서는 다른 그 누구도 입장 허가를 받을 수 없다.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다.”
짧은 소설인 이 <법 앞에서>의 결말에 상당히 충격 받았다. 맞는 때를 기다렸는데 내가 들어가고자 했던 문이 사실은 나만을 위한 문이었다니. 나만을 위한 문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낸 시골 남자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읽고 있는 책에서 바로 이 소설에 대한 평론이 있었고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다.
(나는 '충격적이다'라는 말로 밖에 표현 못하는데,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엄청난 문장으로 그 충격을 텍스트화한 것이 경이로웠다. 문학평론가는 다르구나, 하고 또 충격 받았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이러한 물러섬이,
네가 피할 수 있었을 단 하나의 괴로움일 것이다.
<죄와 고통, 희망 그리고 진정한 길에 이르는 성찰>
"시골 남자는 문지기의 말을 무시한 채 진입을 강행하지 못했고 문지기의 말을 받아들여 되돌아가는 선택을 하지도 못했다. 그는 그저 물러섰다.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물러섬이 아니라,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다른 상황이 도래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물러섬이다. 물러선 결과 법 앞에 서서 법에 종속된 삶을 살게 된 그는 자기 인생의 죄인이다.
기다림도 선택일 수 있지만 자발적 기다림과 종속적 기다림은 선택이 아닌 물러섬이다. 그는 막연한 미래를 기다리며 현재를 낭비한 대가로, 그러니까 선택하지 않고 선택당하길 기다린 대가로, '법'이 무엇인지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오직 자신만을 위한 길이었는데도 말이다. 물러선다면 '인생'이 무엇인지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었음에도. 시골 남자의 기다림에서 자기 삶으로부터도 소외되어버린 무력한 인간의 자화상을 읽는다."
p190~191, <이제 그것을 보았어>, 박혜진, 난다
인생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한걸음 물러서서 그저 인생이 제대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자의 최후를 단편적으로 보여준 결말이었다. 내 인생인데도 손놓고 그저 어떻게 되겠지, 잘되겠지 하며 대책없는 낙관을 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카프카는 "책이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한다고 했는데, 진짜 뒷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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