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 예찬
김지선 지음
#에세이추천 #내향인책추천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책내용
이 책은 순전히 <내밀 예찬>이라는 제목만 보고 샀다. 내향인이 쓴 내밀함에 대한 글이라니 사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과 타인으로부터 적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생활, 경험을 담았다. 이 책을 읽고 점심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에 조금 더 뿌듯해졌으며, 회사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고 조용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 위로가 되었다. 배우 류승수는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이것은 특히 내향인이 바라는 삶이지 않을까. 이런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배우 류승수는 상당한 내향인의 경지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내향인이야기
사실 나는 내가 내향인이라는 것을, 그래서 집단생활이 유독 힘들다는 것을, 무려 20대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수잔 케인의 <콰이어트>라는 책을 보고 세상에는 외향인과 내향인이 있다는 것, 나는 내향인이라는 것, 내향인은 관계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크다는 것, 사회는 외향인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외향인이 내향인보다 결코 뛰어나지 않다는 것, 각자 강점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 후에야 내가 내향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고, 내향인인 나를 좋아하게 됐고, 결국 나의 내향성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농담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린 것 같다. 나는 이제 당당히 말한다. 사람이 많으니 기가 빨린다,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말하기가 어렵다든지, 이런 것들을 그냥 이제 당당히 말한다. 이런 것들이 더이상 내 단점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나의 성향 중 하나라고만 받아들인다. 이것이 내가 20대에 이뤄낸 성취 중 가장 위대한 것이다. (사람은 역시 이래서 책을 읽어야하군.)
📖 책문장
p59. 자신이 웃고 싶을 때만 웃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힘이다. '웃지 않음'으로 인해 한 개인의 튼튼한 성채가 만들어지며, 이는 세상이 그를 만만하게 대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방어막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숨쉬듯 굴복하게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분위기가 어색할 때, 나보다 높은 직책의 사람을 만났을 때 또는 습관적으로 나도 모르게 웃을 때가 있다.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웃음으로 말을 마무리한다든지. 이왕이면 밝은 모습으로, 웃는 상으로 말하면 좋겠지만, 웃을 일도 없는데 웃지는 말아야겠다. 웃긴 상황도 아닌데 웃는 이유는 뭘까? 다른 사람의 반응을 의식해서일까?
p60. 운용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시간을 쪼개고 에너지를 아껴서 집중해야 하는 관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타인에게 조금 더 마음을 쏟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에너지가, 체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나 멀티가 안되는 사람이라 한번에 여러 관계를 돌보는 것에 미숙하다. 지인에게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경우도 드물고, 심지어 부모님한테 연락하는 것도 까먹는 사람이다. 당장 매일 만나는 남편과의 관계, 회사 동료와의 관계에 신경 쓰다보면 자주 못보는 친구나 가족들에게 연락하는 것은 조금씩 뒤로 미뤄지고는 한다. 이게 바로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관계를 돌본다는 것은 나에게는 무척이나 에너지를 갉아먹는 일이다. 관계에 쓴 시간 이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낸 후에야 에너지가 재충전된다. 나같은 사람을 묘사하는 단어가 바로 '무심한 사람'이겠지. 나는 무심한 사람이었다.
p140. 식탁에 대한 로망은 곧 '대화가 있는 삶'에 대한 로망이었다. 즉, 낮시간 동안 있었던 일들과 하루치의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체념을 나누는 삶, 항상 먹고 싶은 게 있는 삶, 나 자신과 상대를 위하여 기쁘게 요리하는 삶, 부부가 중심인 삶, 아이를 작은 어른으로 존중하는 삶, 디저트와 티타임이 있는 삶, 디저트와 티타임만큼의 여유가 있는 삶.
책으로 성숙해지는 생활. 책은 저자의 솔직한 생각이 담긴 곳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의 사람을 텍스트로 만나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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