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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바다의 뚜껑, 마리와 하지메가 꾸려 가는 여름 이야기

by 민히 2022. 10. 23.


바다의 뚜껑
저자/요시모토 바나나
번역/김난주

 

 

나는 독서 편력이 심하다. 에세이와 인문, 사회과학 도서를 주로 읽고 이상하게 소설에는 손이 잘 안 간다. 요즘엔 문학적 감수성을 길러야겠다, 문학적 감수성이 높으면 세상이 더 아름답고 작은 것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소설도 골고루 읽기 시작했다.

소설 <바다의 뚜껑>은 마리, 하지메 2명의 소녀가 여름을 보내는 이야기다. 마리는 한때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던 고향이 어느새 사람들이 더이상 찾지 않는 곳이 되고 생기를 잃어가자 고향에 내려가 직접 빙수 가게를 차려 마을을 찾는 사람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일을 시작한다. 자기부터,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씩 해나가는 것이다. 하지메는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를 떠나 보낸 아픔으로부터 회복하기도 전에 할머니의 재산을 둘러싸고 다투는 친척들에게 상처 받은 채, 여름 한 계절동안 마리의 고향에 내려와 마리의 빙수 가게 일을 도우며 함께 여름을 보낸다.

('바다의 뚜껑'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바다의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아 바다에 물이 차오른다는 노래 가사였다. 실제로 존재하는 일본 노래인지 소설에서 지어낸 노래인지 모르겠다. 이야기의 끝에 마리와 하지메는 함께 보낸 여름을 통해 각자의 아픔을 치유하고 성장하여 결국 바다의 뚜껑을 잘 닫았다.)

🔖책문장
p12.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사실 얼굴은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근원에 있는 것을 본다. 분위기와, 목소리, 그리고 냄새...... 그 전부를 감지한다. 하지메의 근원에 있는 것은 조금도 어긋난 곳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상 속에 애매한 부분을 갖고 있는데, 하지메는 그늘이 조금 있어도 올바르고 강한 느낌이었다.

p35. 하루하루의 일에 쫓겨, 평생에 한 번뿐인 이 여름이 예상할 수 있는 시간이기를 원하며 스스로 자신을 좁히려 했다. 사실 시간은 모두에게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있는 것인데, 스스로 틀에 끼워 맞추려고 했다.
나는 하루를 예측하고 싶어하고 계획대로 보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하루가 예상할 수 있는 시간이기를 원하고, 또 예상대로만 흘러간다면 어쩌면 너무 단조로운 삶 아닐까?

p41. 하지메가 해 준 몇 마디 말에 조금은 안심하고 마음을 넓게 가져도 좋겠다는 여유를 갖게 된 것만 같았다.

p47. 이렇다 할 것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런 것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

p62. 그렇게 매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하고도 엄청난 일이다. 서로가 살아 있다는 것.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 누가 정해 준 것도 아닌데.

p63. 정말 굉장하다. 살아만 있어도 만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만약 이 여름, 내가 가게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면, 절대로 깨우치지 못할 감각이었다.

p64. 청소라는 건, 그 사람이 그 공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청결히 하는 거구나, 하고 절실하게 생각했다.

 


p74. 이런 기묘한 감동 하나하나가 나를 풍성하게 하고, 내 눈동자를 빛나게 하고, 나의 하루하루를 새롭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낮에 하는 일을 다양한 각도에서 복합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p75. 하지메와 함께 있으면 혼자 느꼈을 때보다 훨씬 크고 넉넉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이 활짝 열려 온갖 것들을 훨씬 잘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있어 보다 커지는 경우도 있다.

p102. 해결이란 정말 재미있다. '이제 틀렸네.' 싶을 쯤에는 반드시 찾아온다. '반드시 어떻게든 될 거야.' 하는 생각으로 머리를 짜내다 보면 전혀 다른 곳에서 불쑥, 아주 어이없이 찾아오는 것인 듯하다.


여름을 배경으로 맑고 깨끗한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자극적인 내용 하나 없이 이끌어나가는 이야기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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