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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by 민히 2023. 9. 1.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개브리얼 제빈

 

 

* 도서 제공

#문학동네서평단
 

게브리얼 제빈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천재적이다. 90년대부터 인기 있던 게임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라니. 주인공들은 게임을 좋아하고 게임을 직접 만든다. 스토리 전개 방식과 등장인물들이 하는 비유까지 모든 게 게임과 관련 있다. 
 
게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토리, 게임에 대한 책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일하고 사랑하는 20대 청춘들의 이야기다. 샘, 세이디, 마크스 세 명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이야기. 이들은 하버드와 MIT를 다니는 우등생이며 모두 하나 같이 어린 시절의 아픔이 있지만 자신의 아픔과 열등감을 성취로 승화한 노력파이자 성실한 캐릭터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있기에 각자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었다. 세이디는 샘에게 "너랑 사랑을 나눈다는 생각도 괜찮았지만, 그보다는 너랑 일하는 게 너무 좋았으니까. 인생에서 합이 딱 맞는 협업 파트너는 아주 희귀하니까."라고 말한다. 인생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는 행운.
 
게임은 치유다. 마치 샘과 세이디가 게임을 하는 동안 만큼은 고통과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불만스럽더라도 게임 속에서만큼은 내가 원하는 대로 전략을 짜고 플레이를 하고 죽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계속해서 기회가 주어지고 내가 선택한 전략에 따라 플레이가 진행된다. 게임 안에서는 모든 게 공평하다. 그래서 발이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샘은 세이디와 함께 작전을 짜고 퀘스트를 깨며 게임을 했다. 나중에 세이디가 삶의 고통에 괴로워할 때 세이디만을 위한 게임을 설계하고 게임 속에서 세이디를 만나는 샘. 그 대목에서 나는 진짜 열광했다.
 
이 책은 약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샘은 동양인과 유대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미국인이고 마크스는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 태어난 미국인이다. 샘은 발이 으스러지는 교통사고로 늘 다리가 불편했고 결국 한 쪽 다리를 절단한 장애인이다. 세이디는 90년대 게임산업에 종사한 여성이다. 게임 디자인 수업에는 여성이 단 두 명 뿐이었고 여성을 향한 성적 농담과 차별이 만연하던 시기였다. 서로의 도움으로 각자의 한계를 딛고 성장한 샘, 세이디, 마크스. 저자 개브리얼 제빈도 한국인과 유대인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샘 캐릭터에 저자의 이야기가 많이 녹아있지 않을까.
 
게임과 책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존재 자체가 선물 같은 책이었다. 게임을 이렇게 멋진 이야기로 풀어놓을 수 있다니 그저 감탄스럽다. 저자는 이 책을 구상하면서 여러 가지 게임을 참고했고 그 리스트 중에는 내가 애정하는 <동물의 숲>, <심즈>, <스타듀밸리>도 있었다. 어린이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꾸준히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플레이 해온 나로서는 이 책을 읽는 경험 자체가 어린 시절로의 추억 여행이자 게임을 하고 싶은 생각이 떠나지 않는 시간, 그간 게임을 해오며 느꼈던 재미와 해방감 같은 감정들이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나는 지금도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한다. 스위치로 <젤다의 전설>을 하고 PC로 <데이브 더 다이버>를 한다. 플스로 <It takes two>를 하고 엑스박스로 <포르자 호라이즌>과 <해리포터 호그와트 레거시>를 한다. 남편도 게임을 무척 좋아해서 마치 샘과 세이디처럼 같이 전략을 짜고 번갈아 가며 플레이하기도 한다. 같이 한 캐릭터를 키워나가는 재미와 보람이 있다. 지금까지는 게임을 단순히 즐기기만 했다면, 이 책을 읽은 후로는 게임 제작 과정과 제작자의 의도를 생각하게 되고 아트, NPC들의 대사까지 모든 게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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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들
p66
사실상 선택권이 없으면서도 자신이 선택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p78
만약 세이디가 쿨하게 군다면 지금 이 시간은 허투루 쓴 게 아니게 된다. 세이디는 생각했다. 인생은 아주 길어, 짧지만 않으면.
 
p116
모든 풋내기 예술가들에겐 취향이 제 능력치를 앞서는 시점이 있다. 이 시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것이다.
 
p117
"엄청난 게 될 거라고 믿지도 않으면서 그걸 뭐하러 만들어?"
 
p134
세상이 휘리릭 뒤바뀔 수 있다는 게, 샘은 그저 놀랍기만 했다.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얼마나 자의식이 달라질 수 있는지. 세이디가 <와이어드>와 가진 인터뷰에서 표현했듯, "게임 캐릭터는, 자아와 마찬가지로, 맥락 속에 존재합니다."
 
p174
동트기 전 빛과 눈의 조합은 스노글로브 안에 있는 것처럼 환상적이었고, 그들만의 별세계였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남김없이 쏟아부었음을 아는 이에게 찾아오는 정직한 피로감이었다.
 
p237
귀향은 늘 후퇴로 느껴지는 법이다.
 
p627
지금 우리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그게 꼭 도움이 되진 않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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