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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내 식탁 위의 책들 - 정은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종이 위의 책들

by 민히 2023. 10. 8.

내 식탁 위의 책들

정은지 지음

 


이 책은 치앙마이 여행에 가져갔다. 여행갈 때는 사회과학 책보다는 가벼운 에세이나 소설 같은 게 좋아서 이번 여행에도 편안하게 어디서나 가볍게 펼쳐서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골라 갔다. 공항에서, 치앙마이의 호텔 방에서, 어느 카페에서, 조식을 먹으면서, 수영장에서 틈틈이 읽었다.


<내 식탁 위의 책들>은 몇 년 전에 읽고 이번에 다시 읽은 책이다.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경험은 완전히 새로운 책을 읽는 것 같으면서도 처음 읽었던 순간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한다. 처음 읽을 때와 느끼는 바가 비슷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다르기도 한 게 매력.

 

이 책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종이 위의 음식들'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책 속에 나오는 음식을 소개하는 책이다. 스토리와 음식의 만남. 책에 소개된 음식의 기원을 따라가기도 하고, 책이 한글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길을 읽은 음식의 진실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본인이 푸드 포르노에 중독되었다고 말하며 책 속의 먹는 이야기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책 속의 음식 이야기에 푹 빠져든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책에서 밀크티를 끓이는 방법을 읽다가 정신 차려보니 나도 모르게 영국식 밀크티를 준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적이 있다. 정식 레시피는 더 복잡했겠지만 나는 그냥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티를 진하게 우려서 따뜻한 우유를 붓는 게 전부였지만.

 

저자는 총 25개의 책과 레시피를 소개한다. 소개된 책 중에는 한국 책보다 영미 소설이 많아서 이름만 들어봤던 낯선 음식들의 기원과 요리법, 특징 같은 것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름만 들어봤던 Toad in the hole 이 대체 무엇인지, 독일의 감자 요리와 자우어크라우트가 무엇인지. 인도 요리, 일본 요리, 이탈리아 요리도 나와서, 책 한권으로 전 세계 요리 역사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랄까. 책을 읽는 내내 음식 문화를 알아가는 게 즐거웠다. 

 

내가 좋아하는 바닐라 맛은 대부분 합성 바닐라에서 나온 맛이라는 것, 진짜 천연 바닐라는 재배하는 게 까다로워 무척 비싼 값에 거래된다는 것을 알았다. 파스타는 집에서 후루룩 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저자 역시 나처럼 식당에서 파스타는 잘 사 먹지 않는다는 것도 공감됐다. 각 국의 음식에 대해 읽다보면 과거에는 문화 간 교류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각 문화에서 비슷한 음식이 발달했다는 게 신기하다.

 

이야기에는 음식이 빠질 수 없다. 그래서 거의 모든 이야기에, 책 속에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떤 책을 읽든 음식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책을 읽으려고 여행을 간 것일까?

마스다 미리는 <생각하고 싶어서 떠난 핀란드 여행>에서,

 

"창가 자리가 비어 있었다. 

당근 케이크오 루이보스 티.

잠시 독서 시간이다.

여행지에서 또 책 속 세계로 떠나는 호강스런 한때.

한참 만에 얼굴을 드니 창밖에 헬싱키 대성당이 보인다. 특등석이다.

독서와 관광과 티타임을 한꺼번에 누려보았다."

 

라고 말했다.

독서와 관광과 티타임을 한꺼번에 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치앙마이에서 한 것이다.

나도 마스다 미리처럼 낯선 장소에서 방해받지 않고 책을 읽으려고 여행을 떠난 것 같다.

 

 

 

<내 식탁 위의 책들>에 소개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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