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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 박서련 소설집

by 민히 2023. 11. 4.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박서련

 

 

 

이 책은 온전히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이라는 제목과 귀여운 표지에 끌려 읽었다. 우리 엄마가 나보다 잘하는 게임이라니? 사실 그런 건 무지하게 많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나보다 세상을 산 경험이 많고 세상을 사는 기술도 좋으니까. 아무튼 이 책은 그런 비유적인 의미의 게임을 말하는 건 아니었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게임, PC 게임을 말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리그 오브 레전드, 롤.

 

 

이 소설집의 첫 소설인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은 읽고 나서 머릿 속에 딩- 소리가 울리는 기분이었다. 딩. 게임 속의 화자인 엄마는 아들이 게임을 못한다는 이유로 친구에게 놀림 받고 초등학교 회장 선거에도 못 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롤을 배운다. 그녀는 게임을 곧잘 배웠고, 주부의 삶을 사는 그녀는 게임에서 이루는 성취에 중독되어 새벽까지 게임을 한다. 나도 잘하는 것이 있다! 는 기분이었겠지? 아무튼 그녀는 아들 대신 롤을 해서 아들 친구를 이겨주는데, 문제는 그때부터. 채팅창에 '난 누구누구 엄마야' 라고 입력하고 싶은데 엄마라는 글자가 욕으로 인식돼서 XX라고만 뜨는 것. 엄마라는 단어는 게임 속에서 말할 수 없다는 것. 엄마를 엄마라고 할 수 없는 사실, 엄마가 욕이 된 현실. 

 

 

시어머니와 원하지 않는 여행을 떠난 며느리의 이야기 <곤륜을 지나>와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는 딸의 이야기 <기미>도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돌봄 노동에 굴레에 빠진 여성들. 돌봄 노동으로 고통 받는 것은 대개 여자였다. 딸과 며느리. 사실 돌봄노동은 가족 제도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생계 유지를 위해 돈을 벌면서 누군가를 돌봐야한다는 것. 자기 고유의 일상이 없어지고 이 돌봄노동의 끝이 언제인지도 모른 채 가족을 돌보는 것. 그 막막함에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면 한숨이 나왔다. <기미>에서 원희가 뛰쳐 나가 '나 여기 있다고! 나도 살아 있다고!' 외치는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됐다.

 

 

 

 

 

박서련 소설집의 단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의 삶에 대해 말한다. 누군가에게 터놓고 말하기 어려운 여자의 인생에 대하여. 누군가가 나를 도덕적으로 판단할까봐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이런 여성의 삶을 나누고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나는 소설이 좋다. 소설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삶과 내면을 그토록 솔직하고 세세하게 들여다보기 어렵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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