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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사서 일기 - 엘리 모건, 도서관 살리기 프로젝트와 PTSD 극복기

by 민히 2023. 11. 12.

 
사서 일기

*원제 : The Librarian

엘리 모건
문학동네
 
 

 
 

앨리 모건의 <사서 일기>는 '전직 열혈 사서, 현직 도서관 애호가' 앨리가 사서로서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을 기록했다. 도서관이라는 장소와 그 곳에 오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앨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다. 이 모든 이야기가 픽션이 아니고, 실제 스코틀랜드의 어느 도서관에서 일어난 실제 이야기이고 지금도 전 세계 어느 도서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PTSD로 공황 발작, 우울증, 자살 충동을 겪는 앨리는 스코틀랜드의 로스크리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도서관을 살리고 병으로부터 회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 세계 독자들에게 도서관을 살리기 위해 도서관을 이용하고 도서관의 발전을 위해 지역 주민으로서 목소리를 내자!고 설득한다.
 
책과 도서관을 좋아하는 앨리는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 마법처럼 끌리듯이 도서관 사서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영국 도서관에서만 그런 것인지 한국의 도서관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도서관에서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고(나는 스마트도서관만 이용한다), 도서관이라면 말도 소곤소곤해야하는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시끌벅적한 곳인지도 몰랐다. 주 이용자가 컴퓨터를 무료로 사용하러 오는 극빈층이라는 것도. 도서관은 책을 읽고 빌리는 곳이라기 보다 하나의 지역 커뮤니티였던 것이다. 상상 초월 다양한 사람들이 도서관을 찾는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앨리는 책 빌리는 게 유료인 줄 아는 아이들에게 회원증을 만들어 주고, 기차에 푹 빠진 자폐 스펙트럼 어린이를 위해 기차 전문 서적을 주문해준다.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구직활동을 해야하는 이용자들이 무료로 컴퓨터를 사용하러 도서관에 오지만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몰라 좌절하는 이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알려준다. 폭력 상황에 휘말릴 때도 있다.
 
책을 사랑하고 도서관이라는 장소의 마법을 아는 앨리는 예산 삭감의 위기에 놓인 로스크리 도서관을 살려 도서관을 모두에게 열린 장소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도서관 운영에 관심 없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도서관 이용자 수를 늘리기 위해 상사 몰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홍보하는 앨리. 북 큐레이션대를 정비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빵대회를 열기도 한다.
 
앨리는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자신이 깨달은 것을 트위터에 올린다. @grumpwitch (성질 더러운 마녀) 라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그리고 전 세계 도서관 애호가들의 관심을 받게 되고 하루 아침에 유명인이 된다. 앨리의 트윗은 계속 리트윗되고 라디오 인터뷰도 하고 지역 신문에도 기사가 난다. 앨리는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용기를 얻는다.
 
앨리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도서관 이용자 수는 급증한다. 로스크리 도서관은 그렇게 등급 재분류 결정을 받게 되고, 결국 예산이 확대되고 직원도 한 명 더 늘어나는 성과를 이룬다. 우울증과 자살 충동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이 모든 걸 다 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앨리는 자살 충동에 대하여, 자살 충동을 겪는 사람은 자살을 계획하는 게 아니라 그저 지금 겪는 고통을 끝내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심리 치료와 함께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고 나에게 할 일이 있다는 감각이 앨리의 회복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영국의 도서관 사정과 한국의 도서관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비슷하고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지만, 도서관은 늘 그 자리에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도서관의 유지를 위해 사서와 지역 주민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앨리의 말이 인상적이다. 나 역시도 도서관에 가면 이 모든 책을 공짜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도서관이 공짜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각자 세금이라는 형식으로 돈을 냈다고 앨리는 말한다!)
 
내가 사는 송파구는 송파구통합도서관을 운영하여 구 내에 있는 모든 도서관을 유기적으로 관리한다.(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송파구로 이사오고 나서 스마트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송파구의 모든 도서관에 내가 접근 가능하다는 사실에 또 한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얼마 전에는 가락시장 근처에 책박물관도 생겨서 언제 한번 가봐야지 생각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누리는 도서관 혜택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도서관이라는 장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기분 좋아지는 따뜻한 책이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마음 따뜻해지는 책은 꽤 오랜만에 읽었네.
 
 

 
 

 
 

문장들
 
 
p150
아무리 바빠도 세상 모든 인간에게는 현실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의지하는 무언가가 있다.
 
p248
지금의 내가 깨달은 것은, 대부분의 자살 시도는 죽고자 하는 적극적 선택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고요를 갈구하며 뻗은 손, 우리 중 아무 많은 이들이 품고 다니는 혼란과 트라우마로부터(보다 영구적으로) 벗어나려는 한 걸음이라는 것이다.
 
p291
그 소소하지만 중요한 순간들이 닥쳤을 때 나는 항상 지나치다 싶게 노력할 것이다.
 
p325
도서관은 공짜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미 세금으로 그 비용을 지불했어요. 도서관은 수익성을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미 도서관에 돈을 냈으니까요!
 
p361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그 시절에도 내 안의 무엇인가는 도서관의 힘을 인지하고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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