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처지는 것은 우울증이 아니고,
진짜 우울증 환자들은 정상인들은 상상하지 못할 상태에 빠져있다.
p204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저자 하지현은 환자를 처음 만날 때 "용기 있게 오신 것,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진료를 시작한다고 한다. 정신과를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갈등하고 힘들었을지 알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책을 덮은 후 가장 기억에 남은 문장은 신기하게도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우울하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진짜 우울증 환자들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우울한 상태에 빠져있다는 것. 저자는 정신과 진료를 보면서 환자에게 책을 추천해줄 때도 있다고 했다. 백마디 말보다 책 한권이 환자와 의사 간의 소통을 더 잘 도와준다고 했다.독서를 통해 마음이 힘들어 자신을 찾아오는 환자들을 이해하고 때로는 환자에게 책을 추천하는 의사. 이 책은 책 읽기에 대한 책이지만 세상과 자신을, 그리고 환자들을 더 잘 이해하려는 사람의 책 읽기로 읽혔다.
정신과 의사의 서재
하지현 지음
책 읽기에 대한 책을 좋아한다.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 황보름의 <매일 읽겠습니다>, 니나 상코비치의 <혼자 책 읽는 시간> 같은 저자의 책 읽기에 대한 책은 내 독서 생활을 더 즐겁고 풍요롭게 만들어줬다. 이번엔 정신과 의사의 책 읽기. 그는 엄청난 다독가이고 읽은 것은 에버노트에 차곡차곡 정리까지 해두는 독서가였다. 나도 읽은 것은 내 언어로 정리해 두어야만 내 것이 된다고 믿기에 책 한권을 다 읽고 나면 부지런히 기록하지만, 1년에 100권 넘게 읽으면서도 다 정리해두는 저자의 부지런함, 책에 대한 사랑이 존경스럽다.
보통 책을 고르는 기준은 내가 읽은 책에서 언급되거나(같은 책이 최근에 읽고 있는 여러 책에서 언급될 때는 운명이라고 믿는다!) 가까운 지인이 추천해주는 책을 신뢰한다. 이 책은 책 읽기에 대한 책이라 엄청나게 많은 책이 소개되었다. 심리학이나 정신분석과 관련된 책, 그냥 저자가 좋아하고 추천하고 싶은 책 등등.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가 무거워졌다.
1.
여행갈 때는 어떤 책을 가져갈까?
<정신과 의사의 서재>는 저자의 독서 습관, 좋아하는 책, 정신과 의사로서 추천하는 책 등을 담았다. 그 중에서 그의 독서 습관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는 여행갈 때 가져갈 책을 고르는 부분이다. 2~3일 떠나는 국내여행이든 1주일 넘게 가는 해외여행이든 일단 여행지와 일정이 정해지면 어떤 책을 들고갈지 가장 먼저 고심한다. 보통 2~3권씩 챙겨가는데 어떤 때는 가져간 책을 다 읽고 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 권도 끝내지 못하고 돌아올 때도 있다. 다 읽으면 다 읽은대로, 가져간 그대로 가져오면 그것대로 또 좋다. 상황별로 읽을 책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p171
비행기에서 읽을 책, 호텔에서 시차 적응에 실패한 한밤에 읽을 책, 돌아다니다 다리를 쉬면서 카페에서 읽을 책, 기차에서 읽을 책 등등 상황이 다른 만큼 필요한 책도 모두 다르다.
시차적응에 실패하더라도 밤새 호텔방에서 읽을 책이 있으면 지루하지도 외롭지도 않다.
2.
우울증에 대하여
p207
저자는 일의 의미와 주도권 상실, 고독과 외로움, 사회경제적 어려움, 유년기의 외상기억, 집단 내에서 지위와 존중의 상실, 문명과 도시 생활 같은 자연 경험의 박탈, 안정적이고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태, 타고난 유전적인 생물학적 취약성 등 우울증의 원인으로 아홉 가지를 설명한다.
이 아홉 가지 중 일부의 결핍이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구나.
3.
만화가 야마다 레이지의 <어른의 의무>라는 책을 소개한다. 이 책에서는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의 특징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1) 불평하지 않는다
2) 잘난 척하지 않는다
3) 기분 좋은 태도를 유지한다
기분 좋은 태도를 유지하는 것. 감정은 타인에게 쉽게 전파된다. 그러니까 어른답게 내 감정은 내가 컨트롤하면서 늘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 이게 어른의 책임감 있는 태도가 아닐까. 내 부정적인 기분이나 감정을 옆 사람에게 옮기고 싶지 않다. 내 기분은 내가 알아서.
4.
일 외에 덕질 같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의 중요성.
아무 쓸모 없어 보이는 취미라도, 그것이 내 본업을 더 잘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나를 더 빛나고 생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니까 쓸모 없는 게 아니다. 독서를 좋아해서 부지런히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자부심, 뭐 하나에 푹 빠져서 즐거운 일을 하는 보람, 이런 것들이 나를 빛나게 하고 자존감을 높여준다.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때도, '이 일이 내 전부가 아니야. 나는 000 하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에 일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고 건강한 거리를 둘 수 있다.
p230
그러므로 일과 삶 사이의 경계가 필요하고, 둘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일을 위해서도,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재미는 재미의 영역에 남겨두는 게 좋은 것 같다. 재미있어 하는 일을 생업으로 돌리는 일은 자칫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이 될 수 있다. 즐거움은 즐거움의 영역에 남겨둬야, 밥벌이도 잘 유지되는 역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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