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 days to go
오늘의 책 : 은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나는 일기를 쓰고 틈틈이 이것저것 메모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적인 글쓰기는 아무런 부담 없이 즐기는데, 이렇게 매일 쓰는 서평 같은 글은 조금 어렵기도 하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사실 아름답고 따뜻한 색감의 표지에 끌려 서점에서 집어 들었고, 읽을수록 나의 '공적인 글쓰기'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작가 은유는 세 살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글쓰기 수업에 다녔다고 한다. 그녀는 글쓰기 수업에서 "내가 사는 여기 말고도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 육아를 하면서 어떻게 글을 쓸 수가 있었냐고 물으면, 글을 쓴 덕분에 육아도 하고 그 시절을 잘 보낼 수 있었다고 대답한다.
지금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몇 년전 내가 퇴근해서까지 회사 일로 고통받으며 일과 삶을 구분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자, 남편은 "회사는 '너'라는 아주 큰 세계의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위로해 줬다. 회사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도, 상사나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 받더라도, 내가 준비한 프로젝트가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더라도, '나'라는 세계는 직장인 나보다 훨씬 거대하고 '나'라는 세계 바깥에는 또 다른 세계가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것을 기억하니 그 모든 고통이 예전처럼 커다랗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도 '회사에서 힘들다고 내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게 아니다! 이건 나라는 세계의 조각에 불과하니까. 나에겐 거대한 세계가 있으니까!'라며 일과 삶을 분리하고 건강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김혼비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아마추어 여자 축구선수들의 유쾌한 이야기를 담았다. 대부분 본업이 있고 주말에 모여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 중 한 명은 고기집에서 서빙을 하는데, 식당이모라고 함부로 대하는 손님을 만나도 그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주눅 들지 않는다. '내가 이래 봬도 그냥 식당이모가 아니고 주말에는 축구하는 식당이모라고!' 생각하며 단단한 자존감을 보인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무척 감동을 받았는데 자신이 속한 이 세계 말고 또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런 자존감이 나오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님도 어느 강연에서 똑같은 말을 했다.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려면 본업 말고 다른 걸 할 줄 아는 게 있어야 한다고. 교수님은 그게 기타였다. 그냥 의사인 것과 기타를 치는 의사는 살아가는 것이 천차만별로 다르다고 했다. 결국 교수님도 같은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이것 말고 다른 세계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아는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 말고 그 바깥에 다른 세계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희망이다. 은유 작가에게는 그것이 글쓰기 세상이었고, 식당 이모에게는 축구였고, 윤대현 교수에게는 기타였다. 나에게 그 다른 세계는 나의 소중한 보금자리와 남편, 매일 독서하고 기록하는 시간, 외국어 공부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 365 days to go, 읽고 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5 days to go, 모두가 자기 앞에 놓인 삶을 애써서 살아내고 있음을 (0) | 2023.02.20 |
---|---|
316 days to go, 내 주변까지 나인 거에요 (0) | 2023.02.19 |
318 days to go,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진짜 나일까? (0) | 2023.02.17 |
319 days to go, 손을 내미는 응답 (0) | 2023.02.16 |
320 days to go,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0) | 2023.02.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