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 노트
Victory Note
이옥선, 김하나
김하나 작가의 <말하기를 말하기>를 작년에 읽고, 김하나 작가에 대해 알게 되고 그녀가 말하는 스타일이 좋아서 팟캐스트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무튼 그녀의 신작이 또 나왔는데 그것은 바로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 이옥선 어머니의 육아일기였다!
*김하나 작가에 대한 신뢰와 기대도 있었으나, 책 표지가 예뻐서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초록과 핑크의 조합이 상큼하다.
*빅토리 노트 뜻 : 엄마가 쓴 노트의 제목이 우연히 Victory Note였던 것이다. 후에 엄마가 5년간 써내려 간 이 기록은 진짜 Victory Note가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만 5세가 될 때까지 바쁜 생활 중 틈날 때마다 엄마가 남긴 기록
재밌고 유쾌하고 코믹하다가도 때로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록이었다. 기록의 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육아일기를 쓴 이옥선 어머니는 지금의 나보다 어렸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의 여자로서의 삶에 대한 기록을 읽으면 서글프기도 하지만, 명랑하게 아이를 키우는 모습에서는 웃음이 난다. 무엇보다 이런 사랑을 받았을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꽉 차 오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울고 말았는데, 아이가 만 5세가 되던 날, 이옥선 어머니가 쓴 마지막 육아일기를 읽고서였다. '5년 동안 잘 자라주었고 앞으로의 생을 잘 꾸려나가길 바란다'는 대목에서 가슴이 얼마나 먹먹해지던지. 그 글을 쓰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고, 그 글을 읽는 다 큰 딸의 마음은 어땠을까?
마음이 먹먹해지면서 나의 생을 이토록 응원해주는 존재가, 이것을 글로 적어준 존재가 있다는 것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을 것 같다.
이옥선 어머니는 그 당시에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겪었다고 쓴다. 요즘엔 그것을 산후우울증이라고 표현한다. 홀로 2명의 아이를 키우며 하루종일 하는 말은 아이와 하는 말 뿐. 어른으로서의 지적인 삶, 그러니까 성인답게 대화하고 읽고 쓰는 삶의 부재로부터 오는 상실감 같은 게 산후우울증의 일부이지 않을까? 다시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두려움?
그때는 산후우울증이라는 개념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았을 때니 정신과 상담은 생각도 못하셨을 때이고, 세계문학전집으로 그 시기를 극복하셨다. 지혜롭다. 김하나 작가는 엄마가 읽은 세계문학전집이 엄마의 말을 통해 자기 안에 새겨졌을 거라고 했다.
어쨌든 이옥선 어머니는 이 시기가 언젠가는 끝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그 시기를 마냥 힘들어하지만 않고 좀 더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한다. 그리고 만 다섯살 이후에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며 만세를 불렀다. 힘든 육아 생활에서도 명랑함과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우셨겠지 싶어, 빅토리 노트를 읽는 내내 내 어린 시절이 겹쳐보였다. 엄마는 일을 하면서 나를 키우셨는데도 부모님과의 추억이 무척 많다. 바다로 여름휴가를 갔던 일, 친척들과 계곡에 갔던 날, 동생을 빼놓고 셋이서 제주도에 여행을 갔던 날, 아빠와 단둘이 등산을 한 날, 엄마 따라 절에 갔던 때를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기억이 내 안에 있다. 엄마는 그때 고작 20대였다. 내가 이미 지나온 시간. 20~30대의 엄마는 얼마나 혼자 놀고 혼자 있고 싶었을까. 혹처럼 항상 옆에 붙어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엄마는 여기저기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자식들이 다 커서 집을 떠나고, 엄마는 이제 그 모든 곳들을 자식들 없이 혼자 다닐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렇지만 가끔 엄마는 "갈 데가 없다." "불러주는 데가 없어서 산에 왔다."고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자유를 얻었지만 조금은 쓸쓸해보인다.
빅토리 노트를 읽고 우리 엄마의 사랑을 떠올렸고, 나도 언젠가 엄마가 된다면 남편과 같이 육아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엇보다도 읽는 내내 즐겁고 마음이 따뜻해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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