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수많은 실패작이 있다
I remember nothing and Other Reflections
노라 에프런
Nora Ephron
노라 에프런, 그녀의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장르이다. 그녀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줄리&줄리아>까지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나는 <줄리&줄리아>를 무척 재밌게 봐서 올해하고 있는 나만의 독서 챌린지의 이름도 '365 days to go'로 지었다. 매일 365에서 숫자가 1까지 줄어들 것이다.
<내게 수많은 실패작이 있다>는 노라 에프런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로맨틱 코미디를 쓴 시나리오 작가답게 자신의 삶도 유쾌하게 관찰한다. 여성의 삶과 나이듦에 대하여. 특히 이혼에 대해서,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서.
나이 든다는 것
이 책의 원서 제목은 'I remember nothing and other reflections'다. 그녀는 노화 때문에 자꾸 잊어버린다. 영화 제목이 기억이 안 나고 과거에 있었던 중요한 순간들마저 가물가물하다.
P11
잊어버린 것은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말했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삶이라고.
P18
어떤 점에서는 내 삶이 나 때문에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기억을 못 한다면 누가 기억을 해줄 것인가? 과거는 신기루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현재는 감당하기 어렵게 늘 내 앞에 서 있다. 그것을 따라잡기가 버겁다.
P21
(놓쳐버린 말을 찾기 위해서는 그냥 구글로 가서 찾아오면 끝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삶을 찾아올 수는 없다.
P197, 200
나는 늙었다. 나는 예순아홉 살이다.
내 앞에 좋은 시절이 단 몇 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깨달음은 어떤 강력한 힘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매일매일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자문해 보았다. 나는 목표를 낮췄다. 쉐이크쉑에서 나온 얼린 커스터드와 공원 산책이라면 나의 완벽한 오후로 충분하다.
이혼에 대하여
이 책은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사 기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으로 일한 경험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렇게 완벽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였던 그녀도, 사실은 여러가지 아픔이 많았다. 그녀는 두 번 이혼하고, 세 번째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이혼했다는 전력은 그녀의 삶에서 아주 오랫동안 중요한 사건이었고 아이들이 다 자라고 전남편과 연락할 일이 없어지고서부터는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됐다. 나이 든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됐다. 그녀의 철학은 "털고 일어나자."라고 했다.
아주 멋진 커리어를 가진 그녀가 자신의 이혼, 부모님의 알코올중독, 노화 등 아주 개인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인샂억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녀만의 매력이고, 이 매력이 영화에 드러난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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